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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스쿠버다이빙

스킨스쿠버-다이빙의 역사

by 신짱!! 2023.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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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수중 세계에 매료된 것은 기원전부터 시작되었다. 인간은 오랫동안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어왔고, 바다는 아직도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몇 남지 않은 지구의 일부이다. 다이빙이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스쿠버다이빙이 어떻게 현재 이렇게 멋지고 도전적이며 마음을 활짝 열게 하는 활동으로 잡았는지 알아보자. 

고대 다이버 
초창기의 다이버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숨 참기 다이빙 기술을 사용했다. 이들은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다이빙 수심과 시간을 성취하는 것을 폐 용량에 의해 좌우 될 수 밖에 없었다. 고대 그리스 때를 보면 수중에서 숨 참기 다이빙을 한 증거가 명백한데, 스파르타의 다이버가 아테네의 군인들 몰래 숨어들어 가 이끼, 해변 그리고 굴을 채취했다고 한다.  식량, 노동, 정복의 필요성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 욕구가 인류를 바다 밑으로 가서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스노클링의 시작
수중에서 보다 오래 머물기 위해, 인간은 수중에서 호흡을 하기 위한 구멍이 뚫린 갈대 줄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임시변통의 호흡 튜브는 일정하지는 않아도 다이버를 수면 바로 아래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숨 쉴 수 있게 했지만, 깊은 수심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수심이 30cm를 넘어서면 갈대 대롱이 열려있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수압 때문에 숨을 쉬는 것이 어려웠다. 또한, 직선으로 만들어진 호흡 튜브 때문에 다이버는 배영을 할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해저면은 볼수는 없었다. 수면 바로  밑에서 배영을 한다는 것은 별로 유용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해저 세계를 탐험하고자 하는욕구를 해결해줄 수 없었다. 호흡 튜브와 더불어 고대 벽화에는 양이나 염소 가죽으로 만든 큰 호흡주머니를 사용하는 다이버를 볼수 있다. 이 주머니의 용량을 보면 아마도 하강을 위해서는 상당량의 웨이트가 필요했을 것이고, 수심이 깊어질수록 수압에 의해 주머니가 압착되면서 거의 쓸모가 없는 방법이 되었을 것이다. 

다이빙 벨
다이빙에서 인류가 이룬 커다란 발전은 아마 다이빙 벨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330년경 알렉산더 대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고안한 다이빙 벨을 이용해서 페니키아의 수중 방어막을 파괴하는 다이버를 지켜보았다. 
양동이를 뒤집어 놓은 모습으로 아래쪽에 열려 있는 다이빙 벨을 가라앉히기 위해 웨이트를 달고 케이블로 수면까지 고정했다. 벨이 가라앉으면 내부의 공기가 압축되었다. 다이버는 벨 아래쪽으로 수영해서 나왔다가 숨을 쉬기 위해서 다시 벨로 들어갔다.  그러다 비교적 짧은 시간을 사용하여도 벨 속에 이산화탄소가 축적되면서 산소의 양은 줄어들어 갔다. 이 시점이면 다이버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벨을 들어올려 공기를 바꿔주어야만 했다. 
수세기가 지나 착용이 가능한 다이빙 슈트가 최초로 고안되었다. 이 구닥다리 슈트와 헬멧은 말그대로 막힌 다이빙 벨로서 팔 쪽에 방수처리가 된 오프닝이 있었다. 그때부터 기술의 발전이 거듭되면서 18세기 말부터 19세기쯤 수중에서의 압력에 대응하여 공기를 넣어주는 펌프가 개발되었고 현재도 다이빙 슈트와 벨은 수면에서 공기를 공급해주면서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1800년경 다이빙 헬멧이 처음 소개되었다 헬멧은 소형 다이빙 벨로 고안되어 다이버 어깨쪽에 넢은 개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간이 수중 세계를 탐엄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했다. 헬멧으로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공기를 펌프질해주어야 했고, 다이버는 무거운 장치를 착용한 채로 쓰러지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했다. 
1800년대 중반경 완전 밀폐형 방수 다이빙 장비가 개발되었고, 영국에서 해난 구조 다이빙이라고 하는 새로운 기업이 탄생하였다. 이 시기 다이버들은 점차 잠수 시간을 늘려가면서 소위 류머티즘이라는 질병으로 잘못 진단된 환자가 서서히 보고되기 시작했다. 이런 유형의 다이빙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행위였기 때문에 다이버의 생리적인 문제점 역시 물 밖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질병으로 인식되었다.  의학계에서는 인체가 수압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는가에 대한 지식이 없던 시절이 었다.  상대적으로 큰 공간의 공기 압력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펌프가 고안되면서 문제는 점차 커져 갔다. 다이버는 케이슨이라고 부르는 큰 공기 챔버를 사용해서 다리 기둥을 세우고 터널을 만드는 작업을 할수 있었다.  작업인부들은 수면에서 케이슨에 들어가면 문을 잠그고 깊은 수심에서 오랫동안 작업하였는데 시간이 길어지자 수면으로 돌아왔을때 심각한 생리적인 질병 상태를 나타내기 시작했고 많은 다이버가 죽었다. 이 압력에 의한 질병을 케이슨 병 혹은 벤즈 라고 불렀는데 이 환자들이 통증으로 인해 몸을 구부리는 자세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1870년대 말 프랑스의 생리 학자 폴 베스가 점진적인 감압의 효과에 대해 연구하였고그가 발견한 사실에 의해 감압 챔버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후 수중작업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산업은 보다 깊은 곳에서 보다 오래 일을 할수 있게 해주었고 그 결과 과학자들조차 모르고 있던 새로운 질병이 발생하게 되었다. 왕립 해곤의 딥 다이빙 위원회의 "벤즈"의 원인을 찾아달라는 요청에 따라 영국의 생리학자 j.s 할데인은 스테이지 감압에 의거해서 일련의 다이빙 테이블을 만들어 냈다. 테이블은 다이버가 주어진 수심에서 머무는 시간에 근거하고 있다. 수심이 깊고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벤즈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다이버는 보다 천천히 상승해야 한다고 했다. 할데인으 다이버가 테이블에 맞춰 상승 속도를 조절하면 케이슨 병에 대한 우려가 없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이빙 테크놀로지는 19세기와 20세기 들어 일취월장하게 되었지만 질소 마취 등의 새로운 길병이 여전히 다이버를 괴롭히고 있었다. 깊은 수심에서 축척된 질소에 의 해 생기는 이 상태는 마취 상태와 유사한 증상을 나타낸다. 질소 마취는 깊은 수심에서 판단력을 저하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것을 방해한다. 
1943년에 와서야 젊은 프랑스 해군 장교였던 자크 꾸스토와파트너였던 에밀 가냥이 디멘드형 호흡기를 개발하였다. 디멘드형 호흡기는 다이버가 자신의 수심에 맞는 적절한 압력과 필요로 하는 양으로 호흡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처음으로 다이버는 자신이 소유하면서 자유롭고 완전히 독립적인 구명 장치를 가지고 수중 세계로 내려갈수 있었다.  이러한 혁신은 고압 컴프레셔와 실런디와 함께 SCUBA(Self-contained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 수중 자가 호흡기)라는 이름을 탄생시켰다. 오랜 세울동안 한번의 호흡으로 작업해야 한다거나 무거운 호스와 선을 사용해야 하는 제약에서 벗어나 최초로 사람이 줄에 매달리지 않고 바닷속으로 들어갈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멋진 스쿠버 다이빙 스포츠의 기초가 마련되었고 미지의 세계였던 바다가 이제는 접근 가능한 곳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1900년대 중반, 초기 모델이지만 소비자를 목표로 SCUBA시스템이 시작에 출시되었으나, 레크레이션 다이버를 위한 다이빙 강습 프로그램은 여전히 없었다.  스쿠버의 개척시대였고 대부분 다이버는 매우 건장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힘과 단순한 결정이 아직도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던 스쿠버의 위험성을 극복하고 있었다. 생명을 위협한다거나 다칠수 있다. 거나 하는 스쿠버의 어두운 면은 스쿠버 다이빙의 도전정신과 흥분감의 일부인 양 간주되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이러한 순진한 관점은 적절한 지식, 스킬 그리고 안전한 다이빙 장비로 대체 되기 시작했다. 
1955년 즈음 스쿠버 다이버에게는 잔압 게이지가 없다는 점이 가장 심각한 위험 요인이었다. 공기가 떨어지면 그제야 수면으로 급상승해야 했다. 또한. 당시 호흡기는 수심이 깊어지거나 실린더 압력이 떨어지면 호흡 저항이 많이 심해졌다. 
오늘날의 다이빙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새로운 스포츠에 속한다. 현대 테크놀로지와 강습에 대부분의 발전은 불과 지난25년 이내에 이루어낸 것이다. 믿을수 있는 정교한 장비가 개발되면서 바닷속 깊은 곳으로 다이빙 하고자 하는 시도가 성공하게 된것이다. 수중환경에서 우리는 오로지 교육과 장비에 의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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